정신없는 예방접종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일러둔 다음
교문까지 델꼬 안녕 안녕 내일 보자 인사하고
나도 서둘러 정리하고 조퇴,

이비인후과는 몇 년 만인듯. 예전에 후두염 걸린 이후로 처음인가.
목에 염증이 있으나 성대엔 큰 무리가 없고, 약 먹자, 하시던.

연락은 되지않고 그냥 집으로 가기엔 볕이 너무 따스하고
이리저리 교차로를 두어번 왔다갔다 헤매면서 문자메세지를 넣어보지만
핸드폰은 울리지 않고
문득 지갑 속에 들어가서 몇 달째 나오지 않는 도서상품권 생각이 나서
근처에서 서점을 본 것 같아 고개를 두리번 거려보니
금방 건너온 횡단보도 저쪽에 서점이 하나,
반가운 마음에 같은 횡단보도를 네번째 건너서 서점으로

신간코너에는 낯익은 제목들과 작가들의 이름이 보이고
며칠전 도서관에서 빌려놓은 공지영의 도가니도 눈에 뜨인다.
보통의 존재, 찾아달라 하니 아 그 노란책- 하며
저편 책장에서 뽑아서 건네준다.
몇 장 뒤적이다보니, 역시 난 이런 류의 글을 읽는 재주가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제목부터 멈칫거린, 김훈의 공무도하를 집어든다.

공무도하
-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나는 늘 제목과 표지디자인과 작가의 네임밸류에 끌리는 편이지만
김훈은 나에게 그의 이름만큼은 매력적인 작가가 아님에도
이번에는 집어든다.
표지를 넘겨보지도 뒷면의 추천서나 감상평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이 한 문장으로 충분했다.
한두해 전 우연히 다시 읽은 공무도하가는 어찌나 슬프던지..




따끔거리는 목을 다스리려 병원에 들러 두 손 가득 약을 받아들고선
책 한 권에 마음이 벌써 헤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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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작별이 이루어졌다고 느꼈다.





단 한 문장, 그 담담함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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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슬퍼하지 말자.

꽃을 탓했고 바람을 탓했다.

마음이 반 뼘정도 허공에 붕 뜨는 것 같다.

그건 이미 다 지나간 일이야, 라는 말이
내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올 때
서른 다섯.
슬픔의 무게도 잴 수 있을 것 같은 나이.

그리곤 별이 뜨겠지.

잠시 산보 나왔다고 생각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길다.

죄를 솎아내고 나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제발, 그러할 것이다.

오늘 아침 베란다에 내놓은 선인장 화분이 말라 있는 걸 보았어.
선인장 속에 들어잇는 물방울들이 모두 빠져나와버린 거야.
영혼이 증발한 거지.

내일부터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그건 정말 다행이야.

한밤중 가스레인지에서 피어나는 푸른 불꽃들마저 외로운데,

삼년전 소식이끊긴 네가 사랑니처럼 궁금하다.

목련의 피고 짐은 사랑과 꼭 닮았더라.
둑둑 꽃망울 트트리며 환하게 피다가
검은 꽃잎 낭자하게 뿌려놓고 지듯
사랑도 그러하더라.
필 때는 담장 너머 아득한 거리에서 피다가
질 때는 발에 질끈 밞히며 걸음을 서성이게 하더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꽃이 피었다.

서른 여섯,
잠시 낮잠을 잔 것 같은데
어느 이름 모를 역 앞에 나는 망연히 서 있는 것이다.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떠난 지 오래.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무심한 표정으로 다음 기차는 언제 올 지 로른단다.
서른 다섯 이후의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바람에 두근거렸다.




 - 돌아가는 길 도로 위에서 어지러이 바람에 날리는 분홍 잎들을 보며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이 요즘들어 참 구체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에
    구체적인 슬픔이란 곳을 되짚어 말해주니 그런 것도 같다하던 서른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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